다시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해라 해도 별로 달라질 것도 없는 것이 어쩐지 미심쩍기는 하지만 그래도 살기 위한 노력은 멈출 수 없겠지요?

해서 온 가족이 새해일출을 보기 위하여 호미곶으로 달려가기로 합니다.

살기 위한 노력과 새해일출 구경이 별반 관련은 없겠지만, 가족 모두가 함께 일출을 본 것이 수 년 저쪽의 일이고, 새해 연휴 딱히 할 일도 없는 터라 무식하게 아무런 계획도 없이 그냥 길을 떠나보기로 합니다.

실로 무모한 가족입니다.

육지에서 가장 먼저 일출을 볼 수 있다는 울산 간절곶이 마음 속으로 정한 최초의 목적지였고, 일출 구경 이후로는 경주에서 머물기로 마음 속으로 어스름 계획합니다.

2009년 12월 31일 23시를 훌쩍 넘긴 시각에 어쩐지 야반도주하는 가족들처럼 가방이며 배낭을 둘러매고 살금살금 집을 나섰습니다.

고속도로에 들어선지 얼마되지 않아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굳건히 믿으며, 휴식입니다.
어쨌든 반은 온 셈이니깐.

처음 마주친 영동고속도로 덕평휴게소에서 야식을 하며 TV로 보신각 타종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의례 그 시각이면, 타종식이 벌어지는 종각 인근 풍경을 주르르 중계해주곤 했는데, 금년에는 그런 것도 없습니다.
별 의미없는 오락프로그램이 타종식 직전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사람들이 특정지역에 많이 모여드는 그 상황 자체를 안좋아하는 누군가가 있는 듯 합니다.

어쨌든, 타종이 시작되자 휴게소 안의 많은 사람들이 함께 박수를 치며 새해를 축하합니다.
스키장에서 돌아오는 젊은이들도, 스키장으로 향하는 젊은이들도,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수상쩍은 중년들도, 어딘지 알지못할 어둠 속으로 떠나고 있던 늙은이들도, 화해의 여행을 떠나는 가족도, 파국으로 치닫는 가족도, 모두들 빛나는 새해가 되기를, 근심걱정없는 새해가 되기를 빌고 있습니다.

덕평휴게소는 상행 하행 모두가 들를 수 있는 휴게소이고, 동쪽으로 가는 사람들인지 서쪽으로 가는 사람들인지 그들 모두의 정체를 가늠하고 있기에는 타종 순간이 너무 짧습니다.

그들 중 가장 인상적인 커플 모습이 보신각 종소리 아래 문득 눈에 들어옵니다.

평소보다 휑한 휴게소 한 켠 테이블 위에 작은 크림케익을 놓고 촛불을 밝힌 채 두 손 모아 기도하며 새해를 축하하는 20대 초반의 커플 -  그들의 행선지는 하행인지 상행인지.

33번 보신각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어느 새 케익 커플도 그 짧은 기도를 끝내고 남자가 여자를 등 뒤에서 감싸안은 겹쳐진 스푼 모습으로 타종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불 밝힌 케익 위의 촛불은 두개였고, 사연모를 그 촛불은 안정감없는 휴게소 공기흐름에 너울너울 위태롭게 흔들립니다.

보신각 33번 타종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TV화면은 다시 현란한 쇼프로그램을 비추었고, 하릴없이 TV화면에서 시선을 떼어낸 그 어느 짧은 순간, 그 커플 여자아이의 눈가에 반짝 찰랑거렸던 것이 그 아이의 것이었는지 아니면 내 것이었는지 혹은 휴게소 안 누구의 것이었는지.

2009년의 마지막 밤 그 차가운 바람 속에 난파선처럼 흔들리며 어디론가 향하는 휴게소 처마 밑에 잠깐 머물며 새해 첫담배를 피우고는 다시 자동차를 움직입니다.

영동선에서 내륙선으로 고속도로를 바꾸어 탄 후 차츰 속도를 높이다보니, 그 드라마틱한 명칭과 위치로 말미암아 호미곶으로 행선지를 급변경합니다.

영동선 - 중부내륙선- 경부선 - 대구포항선을 넘나들며 새벽 4시 30분경 호미곶에 도착했습니다.

포항을 지나 구룡포로 향하는 편도 1차선 국도는 쇼트랙 경기를 하는 선수들처럼 라이트를 켠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길게 줄지어 달리고 있었습니다.

모두들 힘들었던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해를 맞으러 가는 모양입니다.

마침내 도착한 호미곶은 퍽 넓은 주차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넘치는 차량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주차장이 턱도 없이 모자라 (주차장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차량이 너무 많은 것이겠지요) 동네 자원봉사 주차요원들이 쇄도하는 차량들을 주변 마른 논바닥으로 안내했고, 간신히 마른 논바닥에 차를 밀어넣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원래 바람이 많은 바닷가이고 이미 기상청에 의해 강풍주의보가 발령되었다고는 해도 온몸을 휘감아 오는 차갑고 세찬 바람은 눈물이 컹하고 나올만큼 칼칼했습니다.

다시 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내복이나 얇은 티셔츠 등을 더 껴입습니다.
밤새 자동차 운행에 시달린 몸도 준비해 간 유자차로 따근하게 재충전합니다.
점검을 끝내고 다시 해맞이광장으로 나섰습니다.

전국에서 몰려온 사람들로 광장은 이미 난민촌을 방불할 정도로 북새통을 이루었고 저마다 비장의 무기를 동원하여 추위와 바람을 견뎌내고 있었습니다.

어스름 밝아오는 사위에 무엇에라도 홀린 듯 사람들은 행렬을 이루어 바닷가로 줄지어 갑니다.

담요를 둘둘 말아 온몸을 감싼 사람, 종이컵에 담긴 오뎅국물을 홀짝이며 걷는 사람...........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떠오를 새해 첫날의 태양을 향하여 해안가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안내방송, 노점상들이 틀어놓은 음악소리 등 번다한 소음만 없다면 어스름한 어둠 속 좀비무리처럼 보일 것입니다.

'상생의 손' 근처 해안은 이미 새벽을 뚫고 돌진해 자리잡은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해안으로 내려서려는 사람들과 이를 말리는 청원경찰들이 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 가족은 방파제 너머로 나아가 앉았습니다.

주변에는 이미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춥지만 그래도 약간 들뜬 기분으로 차디찬 바위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빼곡하게 앉아있습니다.

파르스름했던 사위는 차디찬 강풍 속에서 점차 붉은 빛으로 바뀌어가고 태양은 그 붉은 빛 속에서 2010년 첫 일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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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바람에 떨며 사람들은 저마다 낮은 음성으로 지난 해의 회환을 말하고, 새해의 소망을 읊조립니다. 기상청에서 일출시간을 7시 33분으로 이미 발표해놓은 상태였고 모두들 점차 붉어지는 동녘 하늘과 시간을 번갈아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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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참으로 멋진 일출모습을 보여주려는지 태양이 솟구칠 동쪽 하늘 언저리에는 하얀 뭉게구름들이 연하장의 그것처럼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몸이 휘청거릴 듯 바람은 거세고 어스름 하늘 아래 파도도 몹시 거칠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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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찬 바람 속에서 손에 입김을 호호불며 이야기를 나누며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있는 동안 마침내 쨍하고 붉은 태양이 짙은 회색 구름 사이로 그 찬란한 빛을 내쏘았습니다. 새•해•첫•날•첫•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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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탄식섞인 환호성을 쏘아올렸고 누군가는 두 손을 합장하며 연신 고개를 숙였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 마음 속에 간직한 소망을 소리없이 빌었습니다. 그 모든 사연이며 이야기들을 넉넉히 받아내며 2010년 첫 해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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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새해인사를 드립니다.

새해 모두 건강하시기를,
새해 모두 소망한 바 이루시기를,
끝간 데 없이 부풀어버린 버블은 마침내 올해 거대한 파열음과 함께 터져버릴 것이고,
그 아찔한 추락 속에 근거없는 희망이나마 가슴 속에 보듬고,
새해 모두 잘 견뎌내고 살아남아주시기를.
그리고 마침내 살아남아 얼굴 마주보며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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