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의 계절, 가을이다.

 

너무 들어서 식상하고 진부한 이 문장을 도시에서 듣게 될 경우 사실 별 감흥도 없는 것이지만, 완연하게 가을풍으로 변해버린 시골에서 듣는 이 문장은 상당히 현실감있게 다가온다.

 

토종밤은 길게 뻗어나온 가지에서 농로 위로 떨어져 뒹굴고, 누렇게 변해가는 콩밭 어귀 대추나무의 대추는 짙은 갈색으로 익어가고, 들판을 그야말로 황금빛이 되어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다.

밭에서는 들깨, 콩, 고구마, 수수, 해바라기 추수가 한창이고, 잔치집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내 것도 아닌 수확물을 보면서도 괜시리 한껏 들떠있다.

 

낮이 짧아지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여 곡식이든 자생초든 저마다 내년을 기약하며 씨를 맺고 뿌리기에 여념이 없다.

 

 

내 것이 아닌 수확물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 것인 수확물이 있는데 그건 은행과 잣이다.

내 것이라 해서 스스로 시간을 내어 키운 것도 아니고 원래 심어져 있던 나무에서 저절로 결실을 만드는 것들인데 내 영역에 있음으로 해서 자연 내 것이 된 것이다.

 

서너 그루의 은행나무들은 황금빛 열매를 떨구기 시작했고 몇 그루의 잣나무 역시 부지런한 청설모의 쉬임없는 방문에도 불구하고 일정량의 수확이 있을 듯 하다.

 

제대로 거두어서 지인들에게 보내주어야겠다라고 다짐은 하면서도 그럴 마음의 여유나마 있을는지.

 

은행이 적당하게 들어간 갈비찜과 고소하면서도 든든한 잣죽.

 

이 초겨울 가장 당기는 아이템이다.

 

 

산막 - 뒤쪽 산 깊숙히 몇몇 농가가 자리한, 여기서도 꽤 올라가야 하는 오지이자 산촌이다.

그 입구에는 별다른 과실은 없지만 멋드러지게 자리잡은 자작나무 숲이 있고 열매가 굉장히 커다란 해바라기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다. 그토록 커다란 해바라기를 본 것도 꼬맹이 시절 이후 처음이다. 무슨 이유로 심었는지 알 수 없으나 아랫마을 내게는 기억 저편 아련한 유년시절의 추억을 알싸하게 떠올리게 하는 소품이었다.

 

어쨌든 가을은 점차 나락처럼 어둡고 추운 겨울로 향해 가고 이 가을 농부들은 여름내 심었던 알곡을 거두겠지만 나는 무엇을 스스로 흡족해하며 거둘 것인지.............가을밤이 깊은 만큼 시름 또한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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